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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5 12:10

익숙하다는것.


멕팔레인 교수가 손녀딸 릴리에게 해준말이 있다.


'우리는 나이 들수록 의문을 품지 않고 질문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배운 삶의 가치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그렇게 되면 어느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 된다. 절대적이고 당연한 가치들이 존재하는 곳에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와 네가 사는 세상을 낯선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다. 좀더 객관적인 눈으로 인생을 멋지게 설계하기 위해서 말이다'
읽자마자 속으로 맞아맞아 하는 공감어린말이 머리속을 울린다.
우리가 어릴때는 모든것이 낯설고 새롭고 흥미의 대상이며,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러한것들은 점점 낯설지 않고 새롭고 ,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그러한 것들이 하나둘씩 쌓여가면서, 우리의 삶은 점점 재미가 없고 그냥그런 사람이 되어간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사물을 비틀어 본다.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것이 아니라 사람이 열려있다던가, 우리속에 갖혀있는 것이 가축이 아닌 사람이라던가. 그러면 가끔씩 피식 웃음이 나곤 한다. 뭐 혹시 모르지 정말 나중에 그런것들이 생길지도,
가끔씩 드는 생각은 불가능은 없다. 다만 불가능을 깨는데 시간을 오래걸릴뿐이라고.
 내게 있어 세상은 상식에 대한 도전이다. -르네 마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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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3 15:48

우리가 배워도 되지 않았을걸....


우리는 언제부터 말을 배우기 시작한것일까?
엄마의 뱃속? 아니면 울기 시작한때부터? 어찌되었든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이를 먹고, 말을 배기 시작한다. 아마 대다수가 그러겠지만, 나 역시 '엄마','아빠' 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배우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말귀도 못알아듣는 갓나아이가 가장 많이 들었던것이 엄마, 아빠 일테니까, 여튼 이렇게 짧은 단어로 시작된 말트임은 점점 불어나고, 대화를 할수가 있고, 말귀도 알아듣게 된다.
 하지만, 이러면서 우리는 몰라도 되는 욕을 배우게 된다. '엄마','아빠' 라는 단어만 웅얼거리줄 알았던 녀석이 지성질에 못이겨 'xx'내뱉고 성을 낸다.
아마 판도라의 상자에서 튀어나온것중에 하나가 욕이 아닐까.
좋은말, 칭찬하는말, 감사의 말 ,존경의 말 등등 말로써 할수 있는 찬사를 해도 부족한데, 욕을 배워고 남을 비난하고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이러한 상처는 참 순식간이라, 욕을 하는 사람도 '아차' 이러지만, 이미 입밖으로 나온 녀석은 어디로 숨을데도 없고해서, 여기저기 붙어버린다. 참 순식간이라 막을새도 , 받을새도 없이 상대는 상처를 입고, 그 상처의 치유는 이제 공격자가 아닌 당한자의 몫이 된다.
근데 안타깝게도, 치유의 시간은 순식간이지 못하다.
왜 우리의 신체도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상처는 순식간에 '아차'하는 순간에 생기지만, 그 치유하는 시간은 순간에 몇곱절이 걸린다. 흔적이 남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깊은 상처는 아픔의 고통은 사라질지 몰라도 흔적은 남겨두어 그 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공지영씨가 딸에게 그랬지.
'욕설은 아무리 하찮은 의미로라도 하지말라고, 네가  한 거친 말들이 사라지지 않고 이 지구 위를 떠돌다가 나무에게도 냇물에게도 눈송이에게도 내려앉아 스며들지 아느냐고 말이야, 우리는 그 나뭇잎이 길러 낸 과일을 먹고, 그 물을 마시고 그럴지도 모른다고. '
즉 우리의 언어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이들이 듣는단다. 네가 전달하고 싶은 사람에게만 욕을 하고싶어도, 네 입밖으로 터져나온 녀석은 너를 둘러싼 모든이들을 들린다.
그러니까 한번더 생각하고 얘기하는것이 어떨까. 감사의 말, 고마움의 말, 칭찬의 말을 한다면 그 말들이 사라지지 않고 이 지구위를 떠돌다가 나무에게도 냇물에게도 눈송이에게도 내려앉아 스며들어서 그 나뭇잎이 길러낸 과일을 먹을수 있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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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7 11:18

기욤뮈소의 '구해줘'

기욤뮈소의 작품중에서 처음으로 접한책이다.
책읽은 소감부터 얘기하자면 , 모 제품의 광고 카피처럼 '손대면 멈출수가 없다' 딱 이말이 어울리는 녀석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뒷페이지를 궁금하게 하여, 손을 쉽사리 놓지 못하게 한다. 이것만 보고 덮어야지, 이런생각을 하다가 어느 순간 끝을 보게되었다고나 할까?
작가는 운명론에대해서 얘기를 하고싶었던듯 하다.
처음에는 작가는 사람이란것은 운명이란것이 정해져있어서, 시작과 끝은 정해져있으며, 아무리 피해가려해도, 요요처럼 어느새 정해진길로 가게되있다는 얘기를 하는듯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진행되면서,
주인공을 통해 그 반대를 보여준다. 열약한 환경속에서도, 포기할수 있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믿고 따라가다보면 그때 도착한 곳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것을 얘기한다.
아마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것, 이것이 우리 인간으로서의 운명을 바꾸는 방법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우리에게 정해진 운명이 있다면 '삶과 죽음' 그 시작과 끝 뿐이라는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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